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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인 올림픽 스타에는 누가 있을까?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는 올림픽. 많은 이들의 시선이 집중되는 대회인 만큼 활약하는 선수들은 세계적인 스타가 되는 계기가 되기도 합니다. 어떤 종목의 어떤 선수들이 올림픽을 통해 스타가 되었는지 알아보고, 그 선수들의 근황에 대해서도 살펴보겠습니다.
멀리뛰기 황제, 칼 루이스(Carlton Lewis)
육상황제하면 우사인볼트를 생각할 수 있지만 이전에 칼 루이스(미국)가 있었습니다. 4개의 올림픽에서 총 9개의 금메달과 1개의 은메달이 있으며, 100m, 200m, 4x100m 계주뿐만 아니라 멀리뛰기에서도 금메달을 딴 전설적인 선수입니다.
1984 로스앤젤레스 올림픽에서 100m, 200m, 4x100m 계주뿐만 아니라 멀리뛰기에서 모두 금메달을 따며 4관왕에 올랐고, 1988 서울 올림픽에선 멀리뛰기, 100m 달리기에서 금메달과 200m 은메달, 1992 바르셀로나 올림픽 4x100 계주, 멀리뛰기 금메달, 1996 애틀랜타 올림픽 멀리뛰기 금메달을 획득했습니다. 총 4회 올림픽에서 멀리뛰기 4연패를 하였고,
마이클 펠프스 때문에 올림픽 다관왕에서 비교가 될 뿐이지, 칼 루이스가 따낸 9개의 금메달은 공동 2위에 해당되는 대기록입니다. 금메달 8개를 획득한 우사인 볼트보다 칼 루이스가 더 위에 위치하는 것이지요.
은퇴 이후 영화에도 관심이 있어 다수의 영화에 출연하였고, 정치에 입문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자격 미달로 상원위원에 출마하지 못했고, 현재는 모교인 휴스턴 대학교에서 코치로 활동 중입니다.
미녀새, 엘레나 이신바예바( Yelena Gadzhievna Isinbayeva)
장대높이뛰기하면 러시아의 엘레나 이신바예바가 떠오르실 겁니다. 올림픽 장대높이뛰기 종목에서 2004 아테네 올림픽, 2008 베이징 올림픽에서 우승했으며 세계선수권에서도 5번 우승했으며 현재 이 종목 실내와 실외 모두 세계 신기록 보유자이기도 합니다. 실외 17회, 실내 9회, 총 26회 세계 신기록을 경신했는데, 충분히 여유 있게 더 뛸 수 있음에도 1cm씩 세계 신기록을 올리는 그녀의 여유가 아직도 기억에 남습니다.
2016년 IOC 선수 위원으로 뽑혀 탁구의 유승민, 펜싱의 브리타 하이데만, 수영의 주르터 다니엘과 함께 2024년까지 선수 위원으로 활동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IOC 선수 위원이 되자마자 러시아의 도핑문제와 관련하여 자국의 이익을 위한 발언을 많이 해 논란이 되고 있습니다.
인간탄환, 우사인 볼트(Usain St. Leo Bolt)
역대 최고의 단거리 달리기 선수, 육상 종목을 대표하는 선수 중 하나이자 수영계 1인자인 마이클 펠프스와 함께 21세기 초반 올림픽을 상징하는 인물로 평가받고 있는 우사인 볼트(자메이카). 사실 그는 2004 아테네 올림픽에도 18세의 어린 나이로 출전했었지만 당시 부상으로 컨디션이 난조해 200m 예선에서 탈락하였습니다. 볼트가 세계적인 스타로 발돋움하게 된 계기는 2008 베이징 올림픽으로 100m, 200m의 세계 신기록을 연달아 갈아 치우는 것과 더불어 카메라 앞에서 포즈를 취하는 익살맞은 모습이 전 세계의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하게 만들었습니다.
우사인 볼트가 최고의 단거리 육상 선수로 주목받는 이유는 당대의 다른 경쟁자들이 감히 따라가지 못할 정도의 우위를 과시하며 마치 예선전을 하는 듯 여유 있게 금메달을 따내는 모습으로 큰 인상을 남겼기 때문입니다. 노력형 천재인 수영 황제 마이클 펠프스와 달리 우사인 볼트는 게으른 천재로 평가받는데, 몸에 달라붙는 느낌이 찝찝하다고 미국 선수들이 입는 최신 소재의 공기저항을 줄여주는 경기복을 입지도 않고 펄럭이며 달렸고, 평소 식단 관리도 특별히 하지 않으면서 경기 전에 자신이 가장 좋아한다는 맥너겟을 먹고 낮잠 한숨 잔 다음 세계 신기록을 달성했다 합니다.
2012 런던 올림픽, 2016 리우 올림픽까지 100m, 200m, 400m 계주를 모두 제패해 총 9개의 금메달을 획득했으나, 2008 베이지 올림픽 400m 계주에 서 동료가 약물을 해서 연대책임으로 볼트의 400m 금메달도 박탈당했습니다.
은퇴 이후 특이하게도 축구선수로 전향하였습니다. 어려서 육상보다는 크리켓이나 축구를 더 좋아했던 우사인 볼트는 2018년 3월 보루시아 도르트문트에서 입단 테스트에 참가한다고 공식 발표 했습니다. 비록 떨어졌지만 다시 한번 도르트문트 입단 테스트에 도전함으로써 자신의 도전의 진정성을 보여줬습니다. 2018년 8월 호주 A리그 센트럴코스트 매리너스 FC에서 프리시즌에 아마추어 구단과의 경기를 통해 축구 선수로 데뷔한 볼트는 처음에는 실력이 프로 수준과 거리가 멀었으나 점점 적응해 가며 2018년 10월 프리 시즌에 멀티 골을 기록하기도 했습니다.
현재 볼트는 ICC 남자 T20 월드컵 2024의 홍보대사로 임명되어 크리켓에 대한 애정과 성장 가능성을 홍보하고 있으며, 젊은 운동선수들을 위한 영감을 주기 위해 세계적인 스포츠 앰배서더로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All Podium 피겨 여왕, 김연아(Yuna Kim)
데뷔부터 은퇴까지 피겨스케이팅의 최정점에 있었던 선수로서 세계 신기록만 11회 경신한 압도적인 스케이터로 평가받는 김연아. 출전했던 모든 국내외 대회에서 3위 안에 들었던 일명 올포디움(All Podium)의 소유자이며,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 피겨 스케이팅 여자 싱글 금메달리스트, 2014 소치 동계 올림픽 은메달 리스트(사실상 금메달리스트, 2연패)입니다.
정부적 관심도, 국민적 관심도 없었도 당연히 국내 후원이나 투자도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던 대한민국 피겨계에서 전 세계 피겨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인물로 평가받으며, 대내외적으로 알려진 열악한 지원, 부상, 타국과의 비교, 연습 방해 속에서도 최정상을 지켜낸 선수입니다. 특히 올림픽 피겨 역사상 최악의 편파판정을 받은 소치 올림픽에서도 심판과 러시아를 원망하지 않고 깨끗이 승복했다는 점에서 인간 승리의 상징으로 여겨지며 대한민국 스포츠 역사상 가장 자랑스러웠던 슈퍼스타 중 한 명이었다고 평할 수 있습니다.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에서 역대급 최고 신기록과 함께 금메달을 목에 걸게 되었고 국민적인 영웅으로 등극하였습니다. 김연아의 전국적 인기는 국내의 웬만한 유명 연예인이나 K팝스타들도 훨씬 뛰어넘었고, 당시에 김연아가 광고한 제품만으로 생활할 수 있다고 할 정도로 광고계를 휩쓸었습니다.
본래 김연아는 자서전에서도 밝혔듯이 2010 벤쿠터 동계올림픽을 끝으로 은퇴를 결정하였습니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피겨스케이팅은 김연아를 제외하고 아직 본선의 무대에 오를만한 클래스가 되지 못했습니다. 이에 김연아는 어린 후배들에게 올림픽이라는 큰 경험을 심어주고 대한민국 피겨 스케이팅의 발전을 위해 2012년 7월 현역 선수 생활을 2014 소치 올림픽까지 이어가겠다고 발표했습니다. 이를 위해 올림픽 출전 티켓이 걸려있는 2013 세계피겨선수권 대회에 출전하여 우승함으로써 3장의 올림픽 출전권을 따냅니다.
2014 소치 올림픽에서는 러시아 빙상연맹 관계자로 구성된 심판진과 어처구니없게 낮게 준 가산점 등의 최악의 편파판정으로 완벽한 연기에도 불구하고 러시아의 소트니코바에 5점 차로 뒤져 은메달을 획득하여 끝내 금메달을 도둑맞고 말았습니다. 이에 외신들은 믿을 수 없다는 반응을 보이며 피겨 역사상 가장 의문스러운 판정이라 비꼬았습니다. 하지만 김연아는 이러한 주변 반응에도 의연하게 결과를 받아들이며, 사실상 모두가 인정하는 금메달 같은 은메달을 획득하며 선수 생활을 은퇴했습니다.
은퇴한 지 오래되었음에도 김연아는 현재까지도 꾸준히 한국 피겨 스케이팅계를 위해 끊임없이 기여하며 노력하는 인물입니다. 2018 평창 동계올림픽 홍보대사 활동 이외에도 국내 피겨 스케이팅 대회에서 시상자로 나서기도 하고, 청소년 동계올림픽을 홍보하기도 하고, 빙상장 건설을 요청하기도 하는 등 한국 체육계의 빈곤한 환경을 지원하는데 여러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